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 작가


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 작가인 성지은, 알록, 이미선은 각각 캐나다, 양평 두물머리, 제주 강정마을에 거주하며, 지역 내 자신의 좌표를 글, 판화, 만화 등의 기록 매체로 선보입니다. 여기에서 가상의 레지던시가 지닌 트랜스 로컬, 탈-성장, 에코 페미니즘적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임시적 거주지에서 부유하는 몸이었던 기억, 페미니스트로서 지역 생활 내 사람을 마주하는 태도, 이방인이자 외지인으로서 지역과의 연대 등 이번 전시의 키워드이자 목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입주 작가 <알록의 말>

“양평 두물머리 6 년 차, 두머리 부엌 협동조합
농부, 목수, 프리랜서, 청년회관을 지키는 활동가들과 함께
4대강 투쟁으로 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5명이 함께 실험적으로 농사짓는 땅과 흙
가톨릭 농민회 여성 분회장님을 통해
지혜롭고 일 정말 잘하시는 마을 할머니를 알게 되었고
그런데 할머니 일당이 남성 일당보다 적어요.
4대강 투쟁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농부가 이주했고,
농부가 사라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만 몰두하지 않고
이곳의 관계 안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뭐가 되어야 하는 압박 없이
천천히 만나면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8년 차 농부의 말, “관광객이 싫은 게 아니라 휙 지나가버리는
강과 맺는 관계가 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두물머리에서 농사 짓던 사람들,
투쟁에 왔던 사람들은 투쟁 이후에 마음 아파서
두물머리 안쪽에 잘 들어가지 못해요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가늠하고 싶은
활동의 규모를 더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멈추는 것에 대한 동의
관광지나 생태 학습관이 아닌
안팎의 경계가 덜한 공유지를 꿈 꾸는
시민으로서 왔어요

내가 생각한 우정의 모습이 아니어도
관계를 지속하고 싶게끔 만드는
일시적 노력의 연속
마을 친구의 말, “흙 속의 미생물이 우리를 연결해줬어”
‘두물머리 친구들’은
뜨거운 단어 아닌 달라질 수 있는
굳어지면서도 움직이는 말
어쩌면, 우리는 공동체가 아닐 수 있어요

∙ 인터뷰 진행: 봄로야

입주 작가 <이미선의 말>

“제주 강정마을 살이 십 년 차, 여성농민회, 강정평화 활동
육지에서는 경험하지 못 했던
강렬한 자연에 내가 얹어진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가난해서 선택지가 없었던

내 손에 돌아오는 것 없어도
이렇게까지 ‘수눌음’을 하는구나!
부녀회가 마을 행사 때 그림자 노동을
멋지게 싹 해치우고 단합하는 거 멋지고,
허벅다리 만진 할아버지에게 승질, 버럭버럭
시비 걸면 싸우고, 깝치고, 위아래 없는 여자
활동이 쌓이면서 반(反)생명과 싸우는 효율성과
개별적 성인지 감수성이 생기는,
미우나 고우나 ‘삼춘’ 얼굴 비치면 안심하는
EM비누로 몸도 씻고 손빨래도 하고

공동체 감각은 설명하기 어려운 유전자적 차원
원주민의 규칙과 감수성과 나 사이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반대와 환대가 부대끼는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적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관계중심의,
어느새 뽕이 차고 마을에 기여하고 있는
그 규칙과 감수성을 이해하고 결합하는 이주민들

여기, 사람들, 나는
달과 위성
어쩌면 거울
연대감과 친밀감은 다르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초민감자
관계를 잘 못 맺거나 파탄도 잘 내는
그래도 시간, 경험, 신뢰감
활동가와 예술가의 경계가 분리되지 않는,
여기에서 나름 인간이 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기분 좋게 슬퍼해야지!”

∙ 삼춘: 성별 상관없이 친척어른, 이웃어른 등 웃어른을 부를 때 쓰는 제주어
∙ 수눌음: 품앗이, 두레적 전통을 일컫는 제주어
∙ 인터뷰 진행: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