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시대에 공생은 지구의 슬로건이 되어 되찾아야 하는 균형과 회복의 이미지로만 기울어진다. 쓸모에 따라 호출되는 먼 과거와 역동하는 미래를 증거로 삼아 균질한 선처럼 상상된다. 공생의 텍스트성은 단절된 경계를 넘는 연결망과 영향력의 범위를 포유류 뿐만 아니라 미생물로까지 넓힐 것을 요구한다. 또한, 생태계 내의 상호작용으로서의 관계 맺기를 보다 폭넓게 인식하기를 요청한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다세포생물은 다양한 미생물이 여러 가지 이유로 뭉쳐진 존재이다. 즉, 이질적인 존재의 침투와 회유, 협력과 실패 등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 구성된 생물체는 이미 그 자체로 상호작용의 끝이 아닌 과정에 있다. 해로운 물질이 체내에 누적되거나, 이미 존재했던 세포가 변화된 성질로 다른 세포를 공격하며 생기는 질병의 이야기는 그 열림의 과정을 역으로 증명한다.
물질의 침투와 교환이 생명의 기본값이라면, 질병의 스펙트럼은 그 시작점과 끝점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없다. 체내에 최초의 물질이 들어왔을 때인가, 아니면 축적되어 변화가 일어났을 때를 시작점으로 볼 것인가. 물질이 체내에서 잘려나가거나 제거된 후에도 변형된 장기와 물질의 공백은 이전과 같은 신체라 볼 수 있는가. 또는 물질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물질을 투입하여 유해성을 줄임으로써 전염성을 제거하는 방식, 또는 질병이 기본값인 상태는 어떤가.
생명이 트랜스하며 재편되면 정리되지 않는 긴장감, 소음이 발생한다. 노뉴워크는 이를 차이의 당연함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세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공생의 작용 조건을 ‘침해’로 설정하고, ‘다정함’이라는 태도로 탐구한다. ‘다정함’은 뒤섞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피해갈 수 없는 돌봄이라는 관계망, 그리고 그 속에서 가지게 되는 책임감을 살피게끔 한다. 돌봄을 주고 받는 존재가 뚜렷하지 않을 때, 제도적으로 공인되지 않는 가족을 만들 때, 이 다정함은 하나의 실험이 된다. ‘다정함’이라는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제스처는 ‘침해’하는 다양한 패턴으로써 전시장에 유입된다. 이로서 물질의 드나듦과 신체의 변화라는 공생의 과정은 정상성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텍스트성을 거부하는 태도가 된다. 과거와 미래를 매끈하게 연결하는 상태, 투명한 화합의 장으로서가 아닌, 요철로 뒤덮인 물질성과 자잘하게 쪼개지며 뒤섞이는 분해된, 오염된, 유해한, 믿음을 배신한 물질이 있다. 전시 <다정한 침해>는 걸리적거리는 이 물질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고 내딛는 예민한 보폭의 너비를 가늠해본다.
참여작가: 봄로야, 이충열, 자청, 최보련, 혜원
침해자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권세정+권동현), 김정혜, 성지은, 안팎, 정문경, 황예간
침해자들은 전시 내용을 읽고 떠오른 물질을 노뉴워크에게 전달합니다. 물질들은 전시장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놓입니다.
장소: 공간:일리